난 지금 도망을 치고 있다. 점점 다가오는 어둠은 걷힐 줄 모르고 날 삼키듯 다가왔다. 이건 빛도 뚫을 수가 없고 불을 피워도 삼켜내며 손으로 휘저어도 더욱 짙어질 뿐이다. 이곳에서 난 벗어날 수 없다. 알고는 있지만 달리고 있었다. 나중엔 내 손조차 보이지 않아. 내 몸 조차. 어둠이 짙어졌다. 더욱 더 짙어진다. 아니야. 내가 어둠이 돼 버린 건가? 태...
가는 내내 정국은 지민의 손을 놓지 않고 있었다. 그것만으로도 위로가 됐다. 아까는 눈 앞에 캄캄하고 어떡해야 될지 몰랐는데 정국이 옆에 있는 것만으로도, 손을 잡아 주는 것만으로도 지민의 걱정을 눈 녹듯 사라져 버렸다. 하나 걱정 되는 건 정국이 다칠 수도 있단 생각뿐이었다. “…싸우진 마.” 지민이 이렇게 말하니 정국이 웃었다. 왜 웃어? 걱정해줘도 저...
정국의 말대로 정확히 30분 내로 연락이 온다. 음식을 먹던 지민이 들리지도 않는데 숨소리마저 죽이고 정국의 통화 내용을 듣는다. 하루 빨리 만나고 싶었다. 잘 지내시는지 그것만이 궁금했다. 멀리서 보면 되잖아. 그것만으로도 바랄 게 없었다. “장소는 보내 놔.” 통화가 끊기자마자 건너편에서 눈을 반짝이는 지민을 보니 웃음이 난다. 빨리 말해달라고 잔뜩 들...
민망해 죽을 것 같다. 키스는 처음도 아닌데 왜 이렇게 떨리고 계속 하고 싶어지는지 모르겠다. 이 주인님이 키스를 또 더럽게 잘해서 했던 키스 중에 가장 좋았다. 진짜 발정난 개새끼도 아닌데 호텔 가자하면 갈 뻔했다. 제발 살려줘. 이 생각뿐이었다. WARNING 경고등이 켜지고 사랑 타령 웃기시네. 난 안 믿어. 하고 철벽을 쳐야 되는데 그게 모래성처럼 ...
창밖으로 손을 내밀었다. 밤바람이 손가락 사이로 부드럽게 빠져 나갔다. 어렸을 땐 다친다고 하지 말라고 했었는데 지금은 그런 잔소리 할 사람도 없다. 기분이 금세 좋아진다. 지민의 앞머리를 바람이 장난치듯 흩날린다. 지민이 눈까지 감고 가만히 그걸 느끼고 있으니 정국은 그 모습이 또 의외다. 단순한 사람 같다고 생각했는데 지민은 또 그렇지도 않았다. 이목구...
세상에서 제일 불행한 새끼 콘테스트가 있다면 지민은 적어도 3위 안에 들 수 있다고 자부했다. 열 살 때 어머니가 병으로 돌아가시고 그런 어머니를 살리겠다고 아버지는 빚만 잔뜩 진 채로 몸 생각 않고 일만 하셨다. 지민이 고등학교에 입학할 때는 강제로 헤어지게 됐다. 빚쟁이들에게 쫓기는 신세를 지민에게 보이고 싶지 않아 지민을 친척집에 맡기고 연락도 되지 ...
태형은 달아오른 볼을 차가운 손으로 감싸 쥐고 빠르게 걷고 있었다. 울지 않으려 해도 다가오는 이 상황이 서러워서 따뜻한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오지 말았어야 했다. 오고 싶지도 않았던 곳이었다. 정국이 아무리 자기를 소개하고 싶어 해도 끝까지 거절했어야 했다. 결혼할 수 있을 리가 없잖아. 피 맛을 아는 야만적인 육식이랑 고귀한 초식이랑 결혼할 수 있을 ...
지민은 화장실로와 손을 씻으며 중얼댔다. 내가 뭐 그렇게 잘못한 게 있었지? 나름 착하게 살지 않았나? 이렇게 역대급 또라이가 내 첫 지명이라니 말도 안 돼. 일은 오래 한 편이다. 하지만 지명은 처음. 그러니 이 시스템에 대해 거의 문외한이다. 마치 초보자가 된 것 같은 느낌까지 든다. 운이 더럽게 없는 편도 아닌 것 같은데 이럴 때만 운 빨이 바닥을 친...
“결혼할래?” 지민은 그 말에 마시던 커피를 뱉을 뻔했다. 할래? 하자도 아니고 할래라니 이 새끼가 제대로 미친 것 같다. 지민의 외모에 반해 몇 날 며칠을 따라 다니던 놈이었고 만날 때 마다 돈을 받았다. 50씩 준다고 해서 그렇게 지내고 있었다. 그냥 데이트. 대낮에 만나 대낮에 헤어지는 데이트. 지민이 어이없다는 듯이 픽 웃자 조금은 자존심이 상한 것...
36. [과거] 역시나 가보니 탑 마을에서 연기가 자욱하고 사람들 비명소리가 들려. 철문도 살짝 열려 있었고 이미 아비규환이었지. 총소리가 난무하고 윤기와 윤기 아버지는 앞장서서 안으로 들어갔어. 정국이도 따라가고 태형이도 뒤따르지. 태형이는 솔직히 조금 겁났음. 자기가 생각한 것보다 마을이 더 엉망이 됐으니까 어린 아이들도 죽어 있는 게 보이니까 입이 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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